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동열/선수 경력 (문단 편집) ==== 1990 시즌 ==== ||<#182132> [[KBO 골든글러브|[[파일:KBO 골든글러브 로고.svg|height=40]]]] [br] [[틀:KBO 골든글러브/투수|'''{{{#b58a5d KBO 골든글러브}}} {{{#ffffff 투수 부문 수상자 (1990)}}}''']] || 1990년에는 개막전 광주 빙그레전에서 난타를 당하며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.[[https://sports.news.naver.com/news.nhn?oid=001&aid=0003463450|19900408 관련기사]] 그리고 이해 선동열의 대학후배인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가 선동열의 역대최고액 계약금을 갱신하면서 데뷔했고,[*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 : 계약금 1억 4천만원, [[선동열]] : 계약금 1억 3천 8백만원.] '''데뷔전에서 프로야구 최초로 151km을 뿌리면서 6타자 연속삼진을 잡는 등 [[https://www.nocutnews.co.kr/news/4396822|1990:오늘 뭐했지?]] ''' 선풍을 일으켰던 관계로, 선동열이 충분히 위기감을 느낄 시점이었다.[* 결과적으로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는 그해 10승을 거두기는 했지만, 제구불안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.] 그렇지만 선동열은 개막전의 부진을 떨쳐내면서 이내 폼을 회복했고, 이후 시즌 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다. 특히 한시즌 '''피홈런 제로'''에도 도전했지만, 시즌 막판인 9월 25일 인천 태평양전에서 [[김동기]]에게 피홈런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도전에 실패한다. 1990년, 해태는 전년도에 이어 정규리그 2위를 마크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다. 그렇지만 [[KBO 플레이오프/1990년|1990 플레이오프]]에서 삼성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. 당시 선동열은 구원등판한 1차전에서 삼성 [[김용국(야구)|김용국]]에게 홈런 등을 맞아 패했고, 다음날 2차전에도 2점차로 앞선 9회초 2아웃에 구원등판했으나 [[김용철(야구)|김용철]]에게 동점홈런을 맞고, 연장전에 가서는 역전까지 허용하는 부진을 겪었다.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LNl_X_KaNkw|요약영상.]] 심하게 말해 그해 해태의 플레이오프 패배 원흉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. 이로 인해 선동열은 포스트시즌에 약하다는 편견을 얻게 되었다. 더 자세한 사항은 [[KBO 플레이오프/1990년]] 문서 참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